군대에서 긴 거리를 야간 행군할 때 졸아본 사람은 안다. 졸리면 걸으면서도 자는 게 사람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저 열심히 공부하라는 어른들의 배려! 그래, 이 나라 교사로서 긍정의 씨앗을 심고 좋은 쪽으로 바라보려 애쓰지만 왜 이토록 마음이 쓰릴까?

대중가요 속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그저 교실 속엔 '앉으나 서나 공부 생각~ 앉으나 서나 대학 생각~'만 가득하다.

서서 공부하는 책상! 저 괴물을 더 거칠게 바라보면 입시경쟁교육이 고착화된 채 극심한 학습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대한민국 고교생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책상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자는 이유, 서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

고교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이유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하루 열대여섯 시간씩 교실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밤 11시가 다 되어 귀가해도 사교육이 기다린다.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려면 나름 심야 학습을 해야만 한다. 새벽까지 집에서,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니 학교에서 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어떻게든 작금의 입시경쟁구조를 고쳐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입시경쟁은 깊어만 간다. 그래서 입시경쟁교육을 완화하고 고쳐보자고 말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여 현실을 묵과한 처사로 낙인 되기 일쑤다.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내미가 공식 시험도 아닌 '모의고사'를 봤단다. 초등학교에 웬 모의고사가 등장했을까? 이름하여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대비를 위한 모의고사라나?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마다 그 놈의 일제고사 식 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교과별 지역별 평가 결과가 공개되다 보니 일선 초중고 단위학교는 비상일 수밖에 없다.

중학교는 어떤가? 어느 새 일부 중학교마저 야간자율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순수하게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사각의 교실, 기다란 학교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궁극적으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전략인 셈이다.

아이들에게 잠을 허하라, 그게 답이다

지금 우리 고교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뭘까? 한 마디로 잠이다. 어떤 식으로든 입시경쟁교육 구조를 완화해서 교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제 이런 소박한 바람은 식상한 계몽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대학서열화 속에 입시경쟁교육 구조를 완화하자고 제안하면 교육 실세들은 여지없이 되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바꿀 거냐고 항변하듯 말한다. 이미 굳어졌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교육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대책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초등학교가 일제고사를 보고 중학교가 보충수업(방과후학교)과 자율학습까지 진행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고착화된 입시 구조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추세다.
 

교육 당국은 어떤가. 오직 교실에 몰아넣고 교실 안에서만 경쟁에 몰두하게 하면 탈 없고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우리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익혀야 할 학습 내용이 있다면, 교실 밖에서 체험해야 할 더 소중한 학습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

교실에 이동식 간이침대 등장할 날도

그렇다.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선생 노릇 잘 하는 비법이 있다. 입시 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어느 대학 무슨 학과는 몇 점이면 가능하고, 수시, 논술 면접, 입학사정관제, 내신 수능 등 대학입학에 적용될 만한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여 수집하고 분석하여 대학 잘 보내면 훌륭한 선생이다.

대학, 대학원에서 무슨 전공을 했든 일단 현장 교사가 되면 오직 대학 잘 보내는 선생이 돼야 한다. 싸잡아 말할 수 없으나 수업 시간에는 문제풀이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어쩌다 행하는 연구수업, 시범수업, 질 좋은 수업을 위한 세미나 어쩌구 하는 것들은 그 때만 넘기면 되는 요란한 형식들 아닌가?

서서 공부하는 책상에서 서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본다. 이 땅에 '교육(敎育)은 없고 사육(飼育)만 있다'는 탄식을 이해하게 된다. 딱딱한 의자를 푹신하게 바꿔주는 배려는 없을까? 정규 수업만 마치고 귀가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추세라면 이동용 간이침대가 교실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교육이 맞물려 돌아가는 한 '죽어도 교실에서 죽어야 한다'는 불변의 법칙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교실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