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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0월04일 00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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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매향제 대명항에서 시민과 만나다.
김포 매향은 조강리의 갯바닥이며 매향비를 세울 최적지는 애기봉 마루가 될 것이다.



제7회 매향제가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에서 개최되었다.
지난 3일 생명, 평화, 통일의 민의(民意)를 하늘에 알리는 매향제를 유영록김포시장, 유승현김포시의회의장, 이호성대곶면장, 관내기관장과 200여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천년의꿈 천년의비원이라는 주제로 매향제가 대명항 갯벌에서 열렸다.

길놀이, 헌다례, 매향 순으로 진행했고, 시민의 소원을 담은 매향목을 대명항 갯벌에 묻는 의식을 엄수했다.
이는 여민문화연구소 주최로 진행됐으며, 매년 개천절에 매향제를 지낸다.

김포의 매향제가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김포의 문화이다.
앞으로 김포의 문화 매향제가 특정 문화예술인만의 매향제가 아닌 시민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침향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둔다.
沈香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쪼개어쓰는 것이다, 아무리 짧아도 2~3百年은 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香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千年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다.
 질마재 사람들이 沈香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陸水와 潮水가 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自己들이나 自己아들 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未來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서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數百 數千年은이 沈香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다.」

 제7회 <매향제> 발원문

서정주는 이렇게 매향(埋香)에 대해 썼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는 아득한 먼 미래에 향하는 사람들의 꿈·소망·서원을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속적 출세이거나 학문의 향유이거나 숭고한 인류애의 구현이거나 복잡한 현실 너머에 있는 궁극의 진리를 깨우쳐 얻는 것이거나.
‘질마재 이야기’는 신화도 문학적 상상도 아닙니다. 1000여년 전에 비롯된 우리 조상들의 삶을 서사한 것입니다.

꿈과 소망은 1000년전 사람에게도 더욱 더 아득한 옛 사람에게도 있었고 다만 시대를 달리하여 꿈은 구름처럼 혹은 바람처럼 모습을 달리해왔을 뿐입니다.
1000~700여년 전, 사람들은 매향의식을 하고 매향비를 세워 그들의 갈급함을 하늘에 기원했습니다. 문헌상으로는 1002년 고려 익종 때 신안군 팔금도의 매향비가 앞서고 1309년 고려 충선왕 때의 삼일포 매향비가 그 뒤에 있습니다.
위의 두 매향비는 세종실록 등의 기록에는 존재했으나 오늘날에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삼일포 매향비는 겸재 정선의 스승인 농암 김창협이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후대에도 회자될 정도로 조선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일제 때 일인 학자가 탁본을 떠간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발견된 매향비는 10여 기가 있습니다.

평남 정주 덕언면 침향동(1335) 전남 영암군 삼호면 암길리(1344) 전남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1371)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1387)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1405) 전남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1406) 전남 영광군 법성면 고법성마을(1410) 경남 삼천포시 향촌동(1418) 충남 서산군 해미읍 읍내리(1427) 전남 장흥군 낙산면 덕암리(1434) 등.
이들 매향비를 놓고 학자마다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과 태도는 여러 가지입니다. 종교화·신비화하기도 하고 그저 그런 토속품 중의 하나 정도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워낙 비문들이 소략하고 관련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견가운데 공통되는 것이 있는데, 매향비의 건립 연대와 바닷가 마을과 관련하여 왜구의 침탈발호에 맞춰진다는 점입니다.



매향이 집중되었던 여말선초라는 시대는 내부적으로 무능부패하고, 외부적으로 원나라에 복속되어 물건뿐 아니라 처녀·내시 등 사람들까지 수탈당했으며 현실의 모든 것이 피폐한 가운데 마음의 피난처인 종교마저 국가재정을 파탄내고 백성을 착취했습니다.
이것으로 참상은 더할 것이 없을 듯 한데 설상가상으로 해안가는 왜구의 잔혹한 약탈과 살육으로 단 하루도 생명을 보장할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이겠지요. 그 시절의 아픔은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떠나고 헤어지고 버리고. 머물 곳도 갈 곳도 없는 그러함. 구학에 엎어진 시체가 뒤덮던 그러한 절망적인 곳에 간절한 소원을 담은 매향과 매향비가 있었습니다. 뭇 왕릉의 비처럼 부임지에 채 당도하지도 않은 지방관 공덕비처럼 개선문처럼 있지 아니하고 발에 차이는 예사 돌덩어리로 갯가 언덕베기 바위 덩어리로 있습니다. 그저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서글픈 나의 조국처럼 서글프게 말입니다.

비록 지금 매향의식에 관련한 사료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너무나 큽니다. 그토록 가혹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보복이나 원망·저주를 한 것이 아니라 ‘국태민안’이라는 평화와 생명에 대한 지선한 서원과 지덕한 행동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크고작은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국가간 전쟁으로 내전으로 혹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로 학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튜튼족’이나 권력, 탐욕 같은 것 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기적 애국심이나 협소한 윤리의식·종교의식에 편승하여 전세계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다행스런 지구촌의 무사고는 내일의 더 잔혹한 보복을 준비하는 조용한 하루일 뿐이겠지요.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지구 도처에는 나 아닌 남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훔치고 강탈하고 혹은 착취했는지를 자랑하는 기념비나 기념비적인 유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찬란한 역사니, 문화니, 선진문명이니 하는 허울로 윤색된 야만의 결과물들 말입니다.
이 가운데 매향비가 있습니다. 매향은 자굴지심(自屈之心)이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적개심이 아닌 지고지순한 관용, 용기, 자비, 사랑, 평화,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을 지키려는 굳건한 의지와 실천궁행이었습니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매향의 정신이나 매향비같은 기념비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향이 위대한 것입니다.

혹자는 고성 삼일포와 삼천포 향촌리 매향비에 보이는 지방관리나 불교관련 용어에 의거하여 지방관료나 불교조직이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베풀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불교가 삼국시대 이후 천여년간 국교로 이어져 왔으므로 당대의 세계관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통시적으로 볼 때 매향의식은 전통사회의 민간조직인 보·결계·향도 등에 의해 조직·시행되었던 민간자발의 민간고유의 의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매향조에 역시 이러한 견해로써 정의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향의 또다른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 평등과 민주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정치제도로써의 민주주의를 지칭함이 아니라 원의(原意)로써, 혹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원형으로써 백성·민초가 주인역할을 수행했던 민주(民主)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하여 ‘버려진 자’들의 궁여지책이 아닌 확고한 주인의식의 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천 흥사리 매향비에는 불퇴지(不退地)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자신의 삶의 터가 아무리 수탈과 침략의 지옥같은 곳일 지라도 인내하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땅의 주인이 누구인가와 주인으로서의 역할, 즉 민주를 실천한 것입니다.
700여년 전 이땅의 사람들은 그렇게 왜구의 약탈·살육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기를 간절하게 기원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동란 때는 어떤 꿈을 가졌었고 어떻게 그 꿈을 표현했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땅의 사람들은 어떤 꿈을 가져야 합니까.

‘단군 이래 최고의 풍요’를 자화자찬하는 21세기,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고 들여다봐도 이 나라는 여전히 약소국이고 고통 받고 있습니다. 약소해서 분단당하고 태타해서 아직도 분단되어 있으며 그리고 분단되어서 다시 약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봉건시대, 제국시대, 냉전시대, 신자유주의 등 국제사회의 사상동향과 지배구조가 바뀔 때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대표적 희생양 역할만 해온 것입니다. 내외의 수난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는 언제쯤 끝이 날까요. 언제나 고통으로부터의 꿈이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부터의 꿈, 꿈다운 꿈을 기원해볼 수 있겠습니까. 또 이제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하자면 선결문제에 부딪칩니다. 헌법적 가치라는 준엄함보다 ‘이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라는 노랫말이 핵심을 꿰뚫는 통찰로 보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눈앞의 몇푼 남짓 명리에 몰두되어 본질적이며 거시적인 문제를 망각해온 것입니까.
백범 김구선생이 ‘나의 소원은 독립’이라고 세 번 반복한 것도 통일이 된 독립을 말한 것이요, 이 역시 꿈다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말한 것입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아마도 백범 김구선생이 매향비를 보았거나 알았다면 ‘우리 민족만이 일찍이 그러한 일을 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의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적이 없으므로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매향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무릇 사람의 자식된
자로서 또한 자식의 아비된 자로서 앞선 자의 선덕(善德)을 잇는 것은 자랑스러울 것도 따분할 것도 너절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천년을 지나온 세월 속에 꿈은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 모습을 바꿨을 뿐입니다. 생명과 평화와 통일이라는 바람과 구름으로.인지가 채 깨이지도 않은 나의 꼬맹애기가 반드시 당연하다고 옹알대는 이 나라 이 겨레 사람들의 생명과 평화와 통일 말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사람이라면 첫 번째도 마지막에도 서원해야할 민족사적 정통성과 당위로써의 꿈과 소망일 것입니다.

사양·측은·수오·시비지심의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결여되었다면 ‘사람도 아니(非人也)’라는 근본적 규준처럼 말입니다.
비롯하여, 분단의 현장인 휴전선의 서쪽 끝자락에는 한강과 임진강이 서해바다와 만납니다. 밀물때는 바닷물이 강줄기를 따라 내륙 깊은 곳까지 거슬러오고 썰물때는 한강하구인 조강에서 물길이 만나 강화의 북쪽 바다와 김포·강화 사이의 염하강으로 흩어져 갑니다.
강이 바다를 만나는 즈음의 애기봉 자락엔 강 이쪽과 저쪽의 마을 이름이 같은 곳이 있습니다. 김포 조강리와 개풍 조강리입니다. 이곳은 비무장지대 중 북한과 최단 거리이며 물이 빠지면 바짓단 걷어 올리고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전쟁 전에는 밥 먹고 건너가 일하고, 건너와 일하고 돌아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전협정에도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은 유일한 곳입니다. 한 동네 한 생활권이어서 이곳 만큼은 민간의 왕래를 허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김포가 거의 철책으로 둘러싸여서 접근할 길이 없고 애기봉 전망대에서 자전거 손수레 끌고 다니는 북한의 선전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오갈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이 더 하겠지만 놀랍도록 가깝습니다. 바로 턱 밑에 북녘 개풍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멀지않은 사이에는 언제나 기묘한 적막이 흐르고 있습니다.
비롯하여, 오늘날의 매향의 주제인 생명과 평화와 통일을 서원할 곳은 마땅히 김포 조강리의 갯바닥이며 매향비를 세울 최적지는 애기봉 마루가 될 것입니다. 비록 비극적 결과물이지만 이곳 김포는 분단의 현장성과 상징성을 모두 가진 곳입니다. 이것은 휴전선 전체 중의 최적합성 뿐만이 아닙니다. 실상이야 어떻든 인류가 생명존중과 평화를 외치는데 몰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조차 세계 유일의 현장성과 상징성을 갖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더하여 매향은 인류가 추구하는 이념·목표의 이상적·합목적적 전형입니다. 화석화된 유물로써가 아니라 현행의 ‘살아있음’의 가치는 더욱 높은 것이겠지요.
비롯하여, 김포에서 매향제를 올린 것도 여섯 번이요,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조강리나 애기봉에서 매향에 관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자체의 협조 없이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민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매향과 매향비는 커녕 말뚝하나 박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대명항 갯가에서 매향을 수행해온 것입니다.
이 길은 소처럼 그리 가야 할 길이기에 말입니다.
올해 제7회 <매향제> 역시 이곳에서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의 하늘이 열린 날, 그 하늘에 부끄러워하며 그래도 그 하늘에 서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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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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